지난 롯데월드타워덕후의 핫셀블라드는 소품일 뿐이었는데 윤회형의 사진 기대한다는 말에 깊이 반성하며 어제, 다시 핫셀블라드를 꺼내들고 잠실로 향했다.
저번주에 눈여겨본 바로는, 오금로에 위치한 GS주유소가 망했는지 입구에는 공사용 칸막이가 쳐져있고 그 위로 주유소 특유의 지붕에 정유사 로고만 떼어진채 드러나 있었다. 앙상한 나뭇가지는 가지치기하고 난뒤라 깔끔했고, 하얀 칸막이와 오후4시의 긴 태양이 묘한 느낌을 발산하고있었지만 그땐 503cx, d3s, f6 이렇게 가지고 있던터라 xpan으로 찍으면 간지나겠다는 생각에 다음주로 미뤄놓은게 큰 실수가 되어버렸다.
대구에서의 유랑생활을 마치고 바로 집을 나섰지만 날씨가 많이 흐렸다. 아무리 벨비아100이지만 하늘이 쾌청하지 않으니 걱정이었다. 그렇지만 윤회형의 기대를 저버릴 수는 없었다. hp5가 들어있는xpan과 벨비아100이 들어있는 핫셀블라드 503cx를 챙겨 xpan으로 주유소를 찍고 바로 잠실로 갈 계획을 짜고 출발했으나 사거리 코너를 돌자마자 깜짝 놀랄 수 밖에없었다. 하얀 칸막이는 더 높아졌고 사라져버린 주유소지붕대신 현대중공업을 뜻하는 "HYUNDAI'글씨가 선명히 박힌 포크레인만 삐죽 나와있을 뿐이었다. '이런ㅅㅂ'를 속으로 108번쯤 되새기며 아쉬운대로 촬영을 시작했다. 오금로는 일요일보단 토요일이 차량 통행량이 많으며, 내가 찍고자하는 위치 바로 옆엔 버스정류장이 존재하며 버스는 3313,3314,3315,2311,3417 이렇게 4개 노선이 상행, 하행 나누어서 내 시야를 방해했고 왼쪽에는 3.1절 전이라 태극기도 게양되어있었다. 우에서 좌로 바람이 불어주면 좋았으련만 그게 내맘대로 될 턱이있다. 바람은 좌에서 우로 불고있었고 태극기는 내게 나라사랑을 잊지말자고 말하듯이 xpan 뷰파인더에 나타났다 사라졌다를 반복했다. 마치 대한독립을 외치듯이 태극기를 한손에 붙잡고 찍을려는 찰나, 신호대기하는 차량들이 줄지어 뷰파인더에 나타났다. 신호를 6번정도 보내고 겨우 xpan마지막 흑백필름의 한컷을 촬영하고 칼라필름을 넣기 시작했다. xpan에게는 첫 번째 칼라필름이다. 몇 년을 100ft 흑백필름만 쓰다 오랜만에 칼라필름의 뚜껑을 여니 특유의 똥내가 후각을 자극했다. 잠시 아찔한 기운을 느꼈지만 잊었던 옛기억을 되새기는 마냥 쿨하게 xpan덮개를 닫았다. '위이이이이잉, 지징!' 하며 필름카운터에 20이란 숫자가 떴다. 내 100ft필름은 36*24 기준 30컷 정도가 들어가게 감아놓기때문에 xpan에서는 보통 18의 숫자가 뜨는데 여간 기분이 이상한게 아니다. '20이군' 중얼거리며 xpan의 iso를 200으로 설정하고 두컷 정도 촬영하고 잠실로 향했다.
Just older, 2016
늘 한달에 한번씩 촬영하는 5단지 15층 비상계단을 다닌지 4년정도 됐다. 그동안 15층 비상계단에서 찍힌 사진은 많이 봐왔지만, 사람을 만나는 일은 없었다. 그렇지만 오늘은 달랐다. 롯데월드몰 버스정류장을 지날때쯤 530동 15층 비상계단에 흰색 후드를 뒤집어쓴 사람이 추위에 괴로워하는 모습과 삼각대에 설치된 카메라가 얼핏 실루엣으로 보였다. (내 시력 좌우1.2) 잠실역 사거리를 지나는 순간까지도 있길래 나처럼 금방 촬영하고 빠지는 사람은 아닌듯 싶고 롯데외주나 개인작업으로 타임랩스같은걸 찍는구나 하고 어차피 마주쳐야한다며 쿨내라도 풍기기위해 노출계로 미리 노출을 측정 해놓았다. '16반에 1/125'... 503cx에 세팅을 하고 어깨에 걸친다음 쿨내나게 아파트로 진입했다. 엘리베이터 15층을 누르며 어떻게하면 쿨내나게 촬영을 할 수 있을까 고민고민하다가 어느새 15층에 도착했다. 몇년 동안 다니니 내집 아파트처럼은 아니고 존재하진않지만 여자친구 집 놀러가듯이 유유히 복도를 가로질러 비상계단으로 향했다. 비상계단 문 끝에 다다르니 돌돌이 연장선으로 전원까지 끌어다 쓰는 모습이 보였다. '백퍼 타임랩스겠군' 나의 쿨내가 이태원의 팕작가님에게도 닿을 수 있게 철문을 조금 거칠게 열며 옥상으로 향하는 비상계단으로 향했다. 당황해하는 남녀를 한번씩 쳐다봐주고 이내 내 포인트에는 타임랩스가 열심히 돌아가기에 조금 옆에서 503cx의 웨스트레벨파인더로 구도를 잡기 시작했다. 노출은 밑에서 미리 맞추어 놓았고, 촛점은 무한대로 맞춰놓으면 됐으니 확대경없이 구도만 맞춰서 찍기만 하면된다. 두어컷정도 촬영하고 내려갈려 했으나 두번째 컷이 조금 오래걸렸다. 웨스트레벨파인더는 좌우 반전이라 애매하게 삐뚤기만 한것이었다. 내 쿨내가 점점 약해지기 시작했지만 나는 신경쓰지 않았다. 심혈을 기울여 최선을 다하는 열정적인 모습으로 보일거라 믿었기 때문이다. 프린터위에 올려둔 프리즘 파인더를 두고온걸 후회하긴 했지만 이제와서 어쩔 수 없지 않은가! 난 팕작가님의 동기이기때문에 어떻게든 쿨내를 풍겨야했다. 흡족해하며 내려와서 몇컷 정도 더 촬영하고는 스무디킹에서 스트로베리익스트림으로 나 자신에게 상을 주며 하루를 마감했다. 노출계의 iso가 400으로 세팅되어있던걸 미처 알지 못한채..